야릇한 친절



제목에 혹했다.
<야릇한 친절> 이라...? 표지도 그렇고 아무래도 좀 야시시한 내용들이 가득 나오겠거니 ~ 하고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읽히는 페이지가 많아지면서도 좀처럼 야시시한 장면들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낚.인.거.였.다. 하하하

미국에 <사우스 브로드> 가 있고, 일본에 <요노스케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완득이> 가 있다면,
<야릇한 친절>은 캐나다만 성장소설이라 보면 될 듯 싶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언니 태쉬와 엄마를 기다리는 노미의 이야기가 책 한권에 가득담겨있지만,
애절하게 슬프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은 안나온다.

<야릇한 친절>의 배경은 메노파 마을이다.
메노파가 뭔가 했더니만, Mennonites 라는 네덜란드의 종교개혁에 의해 생겨난 기독교 재세례파중 최대의
교파이며 전 세계에 퍼져 있으나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에 집중되어 있는 종교란다.
노미가 봤을때 가장 창피한 종파인 메노파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 현실세계.
사후 세계를 중시하며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추문당하고 
결국은 자신의 새 둥지를 찾아떠나야만 하는 마을에서 노미는 한단계 한단계 성장을 해나간다.
친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반항으로 ......

이상야릇한 친절을 배푸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노미는 친절하지만 야릇함을 느낀다.
이게 바로 야릇한 친절이다. 엄마가 떠난 자리를 느끼게 해주는 그들의 친절함.
이것이 바로 노미가 말하는 "야릇한 친절" 이였던 것이다.
정작 노미는 신경도 안쓰는데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난생처음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깨달은 최초의 순간.
내가 살아 있다면 죽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영원히, 영원히 죽을 수도 있겠구나.
천국이나 다른 별에서의 영원한 삶이 아니라......
단지 어둠, 끝장, 마지막인 거야.
영원히.
이것이 내 새로운 종교의 핵심이며 인생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페이지 : 331 

불행한 마을에서 행복함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노미.
각자 말 못할 사연들을 안고서 하나 둘 노미의 가족들은 메노파 마을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노미 역시 자신만의 세계를 찾기위해 진짜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 노미를 보면서 만약 내가 노미처럼 사후 세계를 믿는, 미신을 숭배하는 저런 마을에 떨어진다면
나는 그 삶을 깨기 위해 노력이라는 것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저 주위에 동화되어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잘 알기에
노미처럼 반항적인 삶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남들을 따라 조용히 살아가면서 불행한 마을에
불행한 삶을 가지고 총총히 걸어갈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미가 용감하게 보인다.
노미는 그 어떤 세상에 떨어져도 용감하게, 씩씩하게 살아나갈 것 같다.
노미같은 친구가 곁에 있다면 용기가 나지 않을까 .......

지금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껴보며 마지막 장을 덮는다.

by jaraddong | 2009/11/30 20:41 | | 트랙백 | 덧글(0)

말이 인격이다



말 한마디에 내 인격이 드러난다!?
태어날때부터 사용하는 우리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또한 평상시에 내가 얼마나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는지도 말이다.
근데, 어째서 국어시간에 이런 표현들을 배운적이 없었던 것일까?
학교 국어시간에 가르쳐줘야 할 내용들이 가득들어 있는 <말이 인격이다>는 한국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고 자신의 말을, 언어를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말이 인격이다>는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예절과 관련된 표현, 높임법, 호칭법, 인사법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들에 
대한 알림이고, 2부는 표현의 오용에 대한 예를 들어 알려주고 있다.
또 마지막 3부는 말하기의 기법과 요령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직장이나 상사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를때 사용하기 딱 좋은 내용들이 가득하다.

예전부터 어른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은 사용하면 안된다고 알고 있었지만,
어른에게 "식사 하셨습니까?" 라는 표현은 사용해선 안된다는 것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식사 라는 단어 자체가 군대식 표현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용하는데는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잘못된 우리말 표현으로 나오니 참 당황스러웠다.
또한 인재와 함께 사용하는 재원(才媛)이라는 단어가 남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자로 풀어쓰면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라는 뜻인 재원은 재주가 출중한 남자에게 사용한다면,
완벽한 망발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잘못된 표현들이 많음에도
그것을 지적해주는 이 또한 없다는 사실은 이미 그 잘못된 표현들이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묻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서글퍼 졌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만들어낸 한글이 아닌가?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지켜내고 바른표현으로 아름답게 사용해야하는데,
외국어를 섞거나 잘못된 단어, 줄임말등을 사용해서 깎아내리는 모습에 나 자신조차 부끄러워졌다.

이제부터라도 내 자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국어의 바른 표현들.
바르게 사용하고 알려주고 그렇게 이제 나 자신의 인격을 높여봐야겠다.

by jaraddong | 2009/11/27 20:57 | | 트랙백 | 덧글(0)

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


제목에 혹해서 읽게 되었다.
십자가에 원숭이가 매달려있다!? 
블랙 코미디 소설이겠구나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헤르만 요제프 초헤라는 신부님이시란다.
아하~!!!
감이 왔다.

<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곱가지 대죄를 현대적 의미로 다시 살펴본다는 얘기이다.

룩수리아 (Luxuria) : 쾌락과 음란
굴라 (Gula) : 탐식
아케디아 (Acedia): 무관심과 나래
인디비아 (Indivia) : 시기
이라 (Ira) : 분노
수페르비아 (Superbia) : 자만심
아바리티아 (Avaritia) : 탐욕

내 기억에 분명 난 기독교 학교를 다녔고, 채플수업도 듣고, <구약과 기독교> <신약과 기독교>같은
기독교 수업도 들었던 것 같은데...어째서 저 일곱가지 대죄가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일까? 하하
어쨌든 요즘 현대인들이 이런것을 알까 싶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이상 일곱가지 대죄는 커녕 저런게 있었나 싶을 것 같다. 나처럼.
만약 <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가 성경을 믿고, 예수를 따르라 라는 내용이였다면,
난 당장 책을 덮어버렸을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종교 강요니까.

하지만, 이 책은 이 일곱가지 대죄를 전통적, 옛 방식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현대 사회에서의 상황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좀 더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엿보이는 좀 착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곱 가지 대죄에 대해 chapter가 나뉘어져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지만,
원시적이거나 도덕적인 훈계방식이 아닌, 저자의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에
읽는데 지루함이나 거북함 또한 존재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흔히 말하는 쾌락의 죄만해도 내가 생각했던 그 쾌락과는 좀 의미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리저리 집착하는 성공에 대한 욕구를 현대적 의미의 쾌락이라 여기는 부분만 해도 그렇다.
중세사회에서 보던 눈이 이젠 현대사회로 넘어와 그 넓은 의미로 해석되고 
또 그 일곱가지 대죄를 여기며 질서를 부여하는 모습이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끔 해주었다. 기독교를 믿고 안믿고를 떠나 누구나 지켜야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아온다.

행복은 언제나 사람이 찾지 않는 곳에 있다.

행복은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며, 

삶으로부터 강제로 쟁취하거나 억지로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언제나 삶에서 가치를 실현할때 가능하다.

이런 가치 실현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에게 행복은 찾아온다.
 
페이지 : <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 中 224~225 페이지
                  Nicolai Hartmann  <<윤리학 Ethik>> 中 87페이지 
              
 

by jaraddong | 2009/11/23 17:53 | | 트랙백 | 덧글(0)

내게도 사랑은 온다


에세이를 별로 안좋아하는 내가 이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 하나.
이 추운 겨울 뜨끈뜨끈한 늑대 목도리 하나 휘리릭~ 목에 두르고 싶어서다.
내게도 과연 사랑이 올까? 라는 이 단순한 질문은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자기자신에게 묻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제 서른이 다가오는데, 내게도 사랑이 올까 라는 궁금함에 펼쳐들었다.

참 신기한 용어를 몇개 알게 되었다.
현대 여성 데이트 불안증후군 (Modern Female Dating Anxiety : MFDA) 라는 말이 있단다..
(아..물론 저자들이 만들어낸 단어같긴 하지만, 왠지 여성 비하 발언처럼 들린다..;;)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으며, 자신감을 갖고 사는 여성들이 데이트를 하면서 많은 착각을 하고
자신감을 잃는 다는 뭐 그런 내용인데..하하하...여자들이 왜???

암튼 남자전화를 기다리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이는 여자들에게 
데이트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일명 SW방법론.
Stop Wondering method 을 이용하면 반복되는 실패를 멈출수 있으며,
이 방법은 사업가가 사용해도 좋다고 한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여기서...그만...)

나는 저자처럼 첫눈에 반한다라든가, 첫눈에 저 사람이 내 사람이다 라고 느끼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그 환상들은 결국 짜증으로 다 변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이 SW방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나도 진실한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웃음이 나오지만, 책에서 하란대로 동그라미도 쳐보고
나의 심리도 체크해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유익하고 알찬 내용이였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사랑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다는 그 관점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 <내게도 사랑은 온다>였다.


by jaraddong | 2009/11/22 16:54 | | 트랙백 | 덧글(0)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제목이 이상하다. 아..순서가 바뀐거 아닌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서 죽였다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였던가?
적어도 내가 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은 그랬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서는 제목에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삶에 총을 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 역사소설인만큼 책은 얇고 작은 문고분이라 읽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싶다.
하지만, 읽고 나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30년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안중근 장군(의사:義士라는 표현은 일본이 안중근 장군을 격하시키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란다.)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역사적 독립운동가라는 것 뿐이다. 그의 아들이, 그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 그들이 존재했었는지조차도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말이다.

안중근 장군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두아들이 있었고, 노모와 아내도 있었다.
그러나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으로 인하여 그들의 삶은 깨져버렸다. 산산조각.
그 전부터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일본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피폐한 삶을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영웅 아버지이자 아들을 둔 죄로 그들의 삶은 더이상 추락할 수 없는 바닥으로까지 쳐닫고 말았던 것이다.

안중근 장군의 아들, 안준생
그는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이란 불명예스럽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가며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아버지의 죄에 대해 죄를 올리며 변절자,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달기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에 대해 우리가 뭐라 할 말이 있나?
그럴 자격은 있나?
물론 그의 아버지가 영웅적인 행동을 했지만, 그 후에 우리가 그의 가족들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일본에 핍박을 당하고 갈 곳이 없는 그들을 외면하고 
사지로 몰아세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내가 안중생이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냥 개죽음을 당했을까?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내 가족과 함께 편안한 삶을 살아갔을까?
아무리 그러면 안되지. 머릿속으로 ,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 상황이 아니면, 그건 아무도 모를일이다.

갑자기 얼마전 월북했다는 사람의 일이 생각난다.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삶도 이젠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졌을까?

100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 작은 책자에는 안중근 장군을 의사(義士)로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그 이유는 책을 읽어야지요...) 우리의 독립 운동가를 잊지 말고 동양 전체의 영웅이였음을 잊지 말라는 것,
마지막으로 그의 아들 안준생을 욕하기 전에 우리의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삼일절이나 호국정신의 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이들을 떠올리지 말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역사적 체계부터 제대로 잡고 
그들의 활동도 기리고, 끊임없이 알리며 관리하는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독립기념관만 한바퀴 돌고 나오는 수학여행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이상에 대해 함께 토론을 벌이는 역사수업이 필요한 때이다.


by jaraddong | 2009/11/22 16:53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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